거진 10년 전 글이지만, 여전히 교육이란 무언가 생각을 더 할 수 있는 글..
<대안교육운동의 시대적 존재이유: 대안교육과 평화교육의 만남>(2003.2.6)
고 병헌 (성공회대학교 교수. <처음처럼> 책임편집인)
우리 사회 대안교육운동은 시기적으로는 1995년 5월 31일 발표된 ‘교육개혁안’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문화적 공세에 대한 교육적 대응으로서 시작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과거 이 땅의 교육을 민주화하기 위한 개별적, 혹은 집단적인 다양한 교육실천과 교육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아울러 동시대적으로는, 문명사적 변혁기에 대안적 가치에 기초한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의 변혁을 통해서 현대사회 위기에 대응한다는, 그리고 세계적으로 힘을 얻어 가는 ‘대안운동’의 정신과 철학을 공유하고 동참한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사회적 약자의 삶은 더욱 불안해지는 경제의 세계화 시대에 작은, 개별적인 ‘꿈’들을 모아서 구체적인 현실로 변화시키는, 교육을 통해서 ‘희망’을 만들고 나누는 ‘진지(陣地)’를 구축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디딤돌로서의 역할도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목적인 것이다.
위기의 시대와 대안교육의 필요성
매우 당연한 말이겠지만, 일반적으로 교육은 시대가 변하면 최우선의 개혁 대상이 된다. 흔히 사람들은 교육이 사람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교육을 통한 사회변혁이 성공했다는 소리를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거꾸로 교육이 변화된 세상에 사람들을 적응시키는 역할을 해 온 예는 많다. 법 논리상으로는 만인은 평등하다지만, 실제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남보다 강한 힘을 행사하는 소수는 늘 존재했으며, 특히 세계화된 경제체제에서는 초국적기업은 국경을 넘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화된 경제질서 하에서는 대부분의 교육자들은 사회변혁의 주축이 아니며,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좀더 구체적으로는 자본이 요구하는 것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시대 변화의 고비마다 교육개혁 요구와 그것을 추동(推動)하는 힘의 중심은 교육계 ‘안’보다는 ‘밖’에 있어왔던 것이다.
1995년의 ‘5․31 교육개혁안’도 마찬가지다. 전후 시기부터 산업화시기 동안 추진되었던 교육개혁안들의 ‘존재 이유’가 그리 ‘교육적’이지 않았듯이, 세계화시대에 부응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5․31 교육개혁안’도 교육계 내부의 요구로 시발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문민정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국내외의 초국적기업, 대기업의 기업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다. ‘소품종 대량생산’의 생산방식에 기초한 산업화시대에 기업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형은 ‘숙련된 노동자’였다. 그래서 학교는 소위 ‘선진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고, 이에 따라서 교실구조도 토론식 수업에 적합한 자리 배열보다는 지식의 일방적 전달이 가장 용이할 수 있는 일렬종대(一列縱隊)식 배열로 획일화되었던 것이며, 학교의 역할이라고는 학생이 주입된 지식을 얼마나 잘 외우고 있는지를 검사해서 등급을 매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대량생산을 통해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지속적인 이윤 창출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한편으로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부단히 기업이 원하는 인위적인 욕구를 창출해 내고, 또 한편으로는 다양한 욕구에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했다. 즉,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특정 분야에서의 ‘숙련도’보다는 ‘유연한 전문성’이 기업에게는 더 절실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유연한 전문성을 갖춘 ‘인적(人的) 자원’을 공급받아 생산에 투여해야 하는 자본가, 기업가의 입장에서 학교를 보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여전히 산업화시대에나 써먹을 수 있는, 기술 활용에서의 순발력과 융통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숙련공’ 생산을 그대로 목표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세계화’라는 담론이 사회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과 때를 맞춰 누구보다도 먼저 기업 회장들이 우리 교육의 경쟁력 없음을 불만하기 시작했고,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육운영에 ‘시장 논리’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5․31 교육개혁안’이 나오게 된다. ‘5․31 교육개혁안’은 분명 교사나 학생, 학부모와 같은, 교육의 직접 당사자 ‘안’으로부터가 아닌, ‘밖’에서 먼저 주장되었고, 성격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다수를 위한 ‘공공성’보다는 소수의 경쟁력 향상을 우선시하고 있다.
그런데 ‘5․31 교육개혁안’과 그 이후에 나온 일련의 교육개혁안들이 교육현장에 몰고 온 파장은 매우 거세다. 열린교육이 주창되고 학교운영위원회가 생겨났으며, 자립형 사립고와 대안학교 건립이 가능해졌고, 교육과정 구성에서도 재량교과 영역이 대폭 늘어났다. 그리고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면서 고교평준화 정책을 도마 위에 올랐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시 교육청은 “교사가 학습목표와 학습내용을 제시하면 학생이 학습계획을 짜 학습자료와 방법을 결정하고, 공부할 장소도 스스로 찾아가 교실․복도․도서관․자료실․멀티미디어실 등 학교 전체를 교실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2003년도 교실수업 개선 및 지원 종합계획’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서두르면 대개 그렇듯이 우리 교육개혁은 한마디로 두서가 없어서 일반인은 물론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변화를 따라잡기가 매우 버거운 실정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심의․결정기구와 단순한 자문기구의 위치를 오락가락하고 있고, 한동안 말 꺼내기가 무서웠던 교원노조를 이제는 사용자도 가입할 수 있게 해놨다든지 하는 것들, 교원 정년도 정책 입안자의 기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고, 한편으로는 창의성교육, 인성교육, 열린교육 하라고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학교 규모가 작으면 통폐합하고 있으며,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공급자와 수요자 관계로 둔갑시켰고, 교육을 ‘인간이라는 자원’을 개발하는 수단 정도로 전락시키는 등 ‘5․31 교육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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