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제각각 삶의 추를 가슴에 달고 있습니다.
추의 무게도 사람마다 제각각이지요.
나이가 어리다 하여 나이가 많은 이보다
반드시 가벼운 삶의 무게를 지닌 것이 아니니,
눈물을 흘려선 안된다는 법도 없습니다"
드라마로도 보았고, 책으로도 보았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 나오는 대사.
수 많은 좋은 대사가 있었고, 콩딱콩딱 로맨스도 좋았지만,
두고두고 내 머리속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저 글이다.
윤희에게는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너무나 가난한 형편, 어머니와 아픈동생을 먹여살리기 위해
남장을 하고 필사를 해서 돈벌이를 해야하는 현실이 무거운 추가 될것이고,
선준에게는 예의와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대부의 삶이 추가 되었을 수도..
문득.. 나의 삶의 추를 찬찬히 생각해본다.
본질을 보기싫어 두리뭉실하게만 느껴지는 그 무게를.
어릴적부터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도 눈에 잘 들어와
하고픈것, 갖고픈것, 좋아하는것. 감정을 욕심내서 주장해보지 못했던 나는
진심을 소리내어 말 하는게 두려운 사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스스로의 진심을 잘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는지도.
스스로를 잘 모르는 사람이 주변을 잘 알 수 없으니 항시 내공이 딸린다.
그래서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 날 알아주는 사람이 좋았다.
그런 사람과 생각을 나누면 내 생각도 한뼘씩 자라날 수 있었으니깐.
돌아보면 추의 모습은 항시 변해왔다.
힘든 상황상황마다 경제적 여건, 가족이, 사회가, 내 모든 것이 추가 되기도하는 ...
이렇게 추의 본질을 모르고 살다보면 모든게 절망스러울 날도 찾아온다.
그런데 책과 드라마의 결론에는
윤희는 부자도령과 결혼을 했다. 그럼 추가 없어진건가??
그렇게 없어지는 것이 정말 삶의 추일까?
책보다는 드라마를 보며 생각해보는 건.
어려운 현실을 방어하는데 급급해서, 능동적으로 꿈 꾸지 않은 윤희의 모습이 추가 아닐까.
(물론 난 100% 이해한다. 방어적 윤희의 모습이 내게도 있으니)
결국 삶의 추의 본질은 스스로를 깨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인 것 같다.
그렇다면 스스로 노력만하면 언제든지 그 추는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문제가 되나?
여기엔 더 자신이 없는게...
성찰하고 노력해도 내 자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 그게 더 괴로운 부분이다.
물론 일깨워주는 이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럴 때 추는 그 무게를 가벼이 하겠지.
드라마에서 서로가 서로의 추를 가볍게 들어주는 존재를 서로 찾은 것처럼.
그래도, 현실은 항시 드라마는 아니니깐.
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찬찬히 들여다보아 갖힌 내 모습을 알기만 한다면,
그걸 사용하는 방법도 익힐 수 있지 않을까?????
현재는 내 절실한 바램이지만, 꼭.. 그런 방법을 찾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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